الثلاثاء، 10 سبتمبر 2019

엑시트

엑시트》는 2019년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가스 테러'라는 독특한 소재와 재난 영화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와 뻔한 클리셰를 모두 배제해서 호평을 받았다
줄거리
한때 산악 동아리 에이스였던 용남. 하지만 지금은 취업에 실패하고 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누나들에게 구박받고 어린 조카에게도 무시나 당하는 신세다. 어느날, 온 가족이 모두 모인 어머니의 칠순 잔치날. 예약해둔 연회장에서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던 동아리 후배 의주를 만났다. 그런데 잔치를 마무리하고 귀가 준비를 하고 있던 그때, 정체모를 가스테러가 벌어졌고 잔치가 끝나가던 연회장 건물을 비롯한 도심에는 유독가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즐겁게 마무리되어야할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이 와중에 용남의 큰누나 정현도 가스를 마셔 위독상태가 되고 말았다.

간신히 가스를 피해 옥상으로 올라와 구조헬기만 타면 되는 상황. 그런데 이게 웬걸, 정원이 초과되어 가족을 모두 태울수 없었다. 용남은 의주를 남겨놓고 혼자가기 미안해서 남게됐고 의주 역시 부점장씩이나 되어서 손님을 남겨놓고 갈순없다며 남는다. 이렇게 남겨진 두사람은 차오르는 유독가스를 피하기 위해 산악 동아리때 배워둔 체력과 기술들을 이용해 드넓은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캐스팅
조정석 : 이용남 역
윤아 : 정의주 역
고두심 : 김현옥 역
박인환 : 이장수 역
김지영 : 이정현 역
강기영 : 구점장 역
김종구 : 둘째 숙부 역
김병순 : 셋째 숙부 역
황효은 : 둘째 누나 역
이봉련 : 셋째 누나 역
정민성 : 첫째 매형 역
박성일 : 셋째 매형 역
배유람 : 이용민 역
유수빈 : 이용수 역
신세휘 : 이용혜 역
오희준 : 드론 형제 형 역 (특별출연)
탁트인 : 드론 형제 동생 역 (특별출연)
이동휘 : 중내천 경찰 1 역 (특별출연)
배해선 : CBA 보도국장 역 (특별출연)
윰댕 : 영상을 통해 상황을 보고 있는 여자 역 (특별출연)
슈기 : 음식 먹으면서 영상을 보고 있는 여자 역 (특별출연)
대도서관 : 영상을 통해 상황을 보고 있는 남자 역 (특별출연)
김강훈 : 한지호 역
반혜라 : 둘째 숙모 역
이정인 : 셋째 숙모 역
김강현 : 기백 역 (특별출연)
윤해빈 : 민지 역
장서우 : 영지 역
김한솔 : 돌찬치 아빠 역
주보비 : 돌잔치 엄마 역
박채익 : 일호 역
김경룡 : 택시기사 역
조성희 : 택시손님 역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1](투르크멘어: Türkmenistan 튀르크메니스탄, 러시아어: Туркменистан, 영어: Turkmenistan, 문화어: 뚜르크메니스딴)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공화국이다.

이란, 아프가니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스피 해에 접해 있다. 중앙아시아 남단에 있는 이슬람 공화국이다. 1990년 8월 주권 선언을 하고 1992년 3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였다. 옛 소련 독립국 중 유일하게 계획경제체제 하에 있다. 국토의 90%가 사막이다. 날씨가 극도로 건조하고 혹서가 계속된다. 민족구성은 투르크멘인 85%로 다수를 차지한다. 소련 제3위의 석유생산국이었다. 천연자원은 석유, 천연가스, 유황 등이다. 공업은 석유의 채굴과 제유, 면공업, 제사업, 유리, 융단업이 발달하였다. 농산물로는 면화, 곡물, 포도, 양모, 누에고치 등이 생산된다. 나라의 동부에서 남부를 싸고도는 카라쿰 운하는 아무다리야강의 물을 카스피해까지 인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전장 1,400km) 주행(舟行) 관개운하로서, 이미 아시가바트 서쪽까지 개통하였다. 본래 물이 부족한 이 나라에 운하의 물이 주는 혜택은 매우 크다.
역사
<nowiki />이 부분의 본문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역사입니다.
인류 최초의 농경유적 가운데 하나인 아나우 유적(아슈가바드 교외).
기원전 2세기 무렵의 파르티아 왕국(중국명 안식국)의 발상지 니사 유적. 현재의 아시가바트가 있는 곳에 작은 취락이 있었다.
사산 제국.
6세기, 투르크계 유목민.
7세기~9세기 우마이야 왕조·압바스 왕조
9세기 사만 왕조.
10세기 셀주크 왕조, 가즈니 왕조, 호라즘 왕국.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공. 일 한국. 티무르 왕조.
16세기~ 1869년 히바 한국, 부하라 한국, 사파비 왕조 등이 침략한다.
1869년 러시아군, 카스피 해 동해안에 상륙.
1881년 제정 러시아군이 아시가바트를 점령한다.(니콜라이 1세)
1882년 제정 러시아에 의해 캅카스 총독 관할구역 내의 자카스피 주로 옮겨진다.
1880년~ 자카스피 철도 개통. 러시아를 위한 면화 재배의 확대.
1910년 경~ 1916년 러시아 수공업의 역할지가 된다.(지금도 섬유 공업이나 면화 재배는 주요한 산업이 되고 있다.)
1916년~ 1918년 반 러시아 대폭동
1924년 투르크멘 SSR로 소비에트 연방(소련) 구성국의 하나가 된다. 농업 집단화에 반발한 유목민의 저항이 36년까지 계속되었다.
1990년 8월 22일에 주권 선언을 하면서, 10월 27일에는 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으로 단독 후보의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98.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1991년 10월 26일의 국민투표로 소련으로의 독립에서 94.1%가 찬성했고 다음날인 10월 27일에 독립했다.[3]
1991년 12월 8일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한 뒤에는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으로부터 독립 승인을 받았다.
1992년 5월 18일 최고 회의가 대통령 권한을 강화한 신헌법을 채택.
1992년 5월 러시아, CIS제국과의 집단안전보장조약서명을 거부.
1992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이 99.5%의 지지로 재선.
1995년 12월 유엔 총회에 대해 영세중립국으로 승인된다(러시아의 영향력을 배제하는 목적이라고 여겨진다).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은 개인숭배에 의한 독재체제로,
2002년 8월에는 종신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국내에서 故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은 투르크멘바시(투르크멘인의 우두머리)를 성으로 하고 있다.
2002년 11월 25일 아슈가바트에서 대통령 행렬이 총격을 받았다. 경호원 1명이 중상.
2006년 12월 21일 당시에 전 대통령이 있었던 故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으며 당시 부총리로 있었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2007년 2월 11일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정식 취임을 했다.
2008년 11월 6일 투르크메니스탄의 현 대통령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과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명박의 카스피 해의 해상광구 공동개발을 착수하기로 합의했었다.[4]
2012년 2월 12일 대선에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7년 2월 12일 대통령 선거에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3선 연임에 성공하여 현직에 이르고 있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1957년 6월 29일~)
2006년 12월 21일 (대통령 권한대행 취임일)
2007년 2월 14일 (정식 취임일)
2012년 2월 12일
2017년 2월 12일
현직
투르크메니스탄 민주당
무역
2000년 기준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러시아(41.08%), 이탈리아(16.02%), 이란(9.66%), 터키(7.42%), 우크라이나(6.26%)이다. 주요 수입 상대국은 러시아(14.25%), 터키(14.18%), 우크라이나(12%), UAE(8.21%), 일본(8.08%)이다. 2000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2,505,546 달러, 총수입액은 1,785,541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천연가스 (1,244,399달러), 석유(513,099 달러), 석유제품(241,927달러), 면화(223,463달러), 가공되지 않은 면화(25,136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파이프(39,699 달러), 항공 제품(29,968 달러), 직조 기계(28,943달러), 가스 터빈(28,350달러), 냉동육(27,977달러)이다.[5]

종교
수니파 이슬람교가 다수이다. 무슬림이 다수인 투르크멘 족들은 종교적 의무를 엄격하게 수행하지는 않으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만은 지킨다고 한다. 시아파 이슬람교와 러시아 정교회도 소수 존재한다.

그러나 한때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이었던 故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는 자신을 숭배토록 유도했었으며, '루흐나마'라는 경전을 발간하여 학교에서 교육 시켰다. 수도에는 거대한 규모의 대통령 황금 동상이 세워져 있다.

국민 건강
평균 수명은 60세이다.

문화
<nowiki />이 부분의 본문은 투르크메니스탄의 달 및 요일명 개칭입니다.
2002년 8월 10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종래에 써오던 러시아에서 유래한 달 이름 및 요일 이름을 개명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새 이름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종신대통령(2006년 사망)인 故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저술한 루흐나마에 제시된 투르크메니스탄의 상징들에서 따왔다.

외교
투르크메니스탄은 2009년 1월까지 현재 127개국과 수교하고 있으며, 40개 이상의 국제 기구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6] 1992년 4월 21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집행위원회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아시아권 5개 공화국의 OCA회원국 가입을 승인하였다.[7] 1993년 11월 11일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은 아시아유도연맹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8]

러시아와의 관계
2005년에는 독립국가연합에서 탈퇴해서 준회원국이 되었으나, 러시아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한관계
대한민국은 1991년 12월 30일에 소련이 해체된 후에 투르크메니스탄을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의 10개국 각각을 독립국가로 승인하였다.[9] 1992년 2월 10일 정부는 독립국가연합(CIS)의 우크라이나, 투르크메니스탄, 벨라루스 공화국과 각각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Porpeta

이언주(李彦周, 1972년 11월 8일 ~ )는 대한민국의 변호사, 정치인이다.
생애
1972년 부산 영도구에서 출생했고, 1995년 서울대학교를 나왔다. 1997년 제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했다. 법조인으로 있는 동안 주로 르노삼성자동차 등 대기업들의 법무를 도왔다.

제19대 총선에 광명시 을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여 새누리당 전재희 후보와 무소속 이효선 후보를 제치고 제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으로 입당하면서 안철수를 도왔고, 이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합당에 앞장섰으며 바른미래당의 국회의원으로 있었다. 그러나 이후 보수 통합을 요구하며 바른미래당의 보궐선거 유세 자체를 비난하는 등 해당행위를 하여 당원권이 정지되었으며, 패스트트랙 4법 국회 대치사태에서 당내에서 선거법 패스트트랙을 놓고 지도부와 갈등하던 중, 패스트트랙 통과에 반발하여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다.

학력
1988년 남도여자중학교 졸업
1991년 영도여자고등학교 졸업
1995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 학사
2004년 노스웨스턴 대학교 법학대학원 법학 석사
2011년 연세대학교 법무대학원 경제법학 석사
경력
1997년: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29기 수료)
2000년: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2004년: 르노삼성자동차 법무팀장
2008년: 에쓰오일 법무총괄 상무
2012년 5월 ~ 2016년 5월: 제19대 국회의원 (경기 광명시 을)
2012년: 제19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2012년: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2012년: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 원내부대표
2012년: 민주당 원내대변인, 원내부대표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
2014년: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2015년: 제19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2015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2016년 5월 ~ : 제20대 국회의원 (경기 광명시 을)
2016년 6월 ~ 2018년 5월: 제20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2017년 5월 ~ 2017년 8월: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2017년 7월: 제20대 국회 운영위원회 인사청문제도개선소위원회 위원장
2017년 9월: 국민의당 민생경제살리기위원회 위원장
2017년 9월 ~ 2018년 1월: 국민의당·바른정당의원모임 국민통합포럼 대표
2018년 7월 ~ 2019년 4월 : 제20대 국회 후반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
2018년 7월 ~ : 시장경제살리기연대 대표
2019년 1월 ~ : 자유민주포럼 대한민국,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공동대표
2019년 3월 ~ : 행동하는 자유시민 공동대표
2019년 4월 ~ : 제20대 국회 후반기 행정안전위원회 위원
의정 활동
프랜차이즈 및 최저임금 관련 발언
2019년에 적용 될 최저임금이 확정된 이후인 2018년 7월 17일 이언주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갑질을 아무리 했다고 해도 최저임금 인상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불공정 거래는 당연히 시정해야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어려움의 원인은 아니다”라면서 “인건비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져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며 “시장을 파괴해 놓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언주는 7월 15일에는 자유한국당 김용태·김종석·추경호 의원, 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 등과 함께 ‘시장경제살리기연대’를 발족하고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 희생된 국민과 기업을 대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

급식 조리사 등 비정규직 비하 막말 논란
이언주는, 2017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당시 SBS와의 인터뷰에서 파업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도중 급식 조리사와 간호조무사 등 서민, 비정규직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언주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규직화로 국민 부담이 상승하고 단순 업무이므로 정규직화 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견해를 밝혔는데 이어서, 여러 차례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 옛날 같으면 그냥 조금만 교육시켜서 시키면 되는 거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는 등의 말을 했다. 그리고는 파업에 대해서는 "미친 놈들이야, 완전히.. 이렇게 계속 가면 우리나라는 공무원과 공공부문 노조원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고 말했다.[2]이러한 발언에 대해 급식 조리사와 간호 조무사 등을 비하한 발언이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언주는 결국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CPMF

A Contribuição Provisória sobre a Movimentação ou Transmissão de Valores e de Créditos e Direitos de Natureza Financeira (simplificada como Contribuição Provisória sobre Movimentação Financeira - CPMF) foi um tributo brasileiro. Sua esfera de aplicação foi federal e foi aplicada de 1997 a 2007. Sua última taxa foi de 0,38%.
História
A Contribuição Provisória sobre Movimentação Financeira (CPMF) substituiu o Imposto Provisório sobre Movimentação Financeira (IPMF), que havia sido criado em 13 de julho de 1993, durante o governo de Itamar Franco, cujo ministro da Fazenda era Fernando Henrique Cardoso. O IPMF vigorou de 1º de janeiro de 1994 até 31 de dezembro de 1994, durante a implementação do Plano Unidade Valor de Referência (U.V.R.). Tinha uma alíquota de 0,25% que incidia sobre os débitos lançados nas contas mantidas pelas instituições financeiras e transações gerais da economia. Inicialmente, pretendia-se que viesse a substituir o Imposto de Renda, uma vez que é um instrumento que atinge as chamadas "Grandes Fortunas Constitucionais". Mostrou-se mais eficaz que o Imposto de Renda, pois gerava muito mais recursos.

Em 1996, já no exercício de Fernando Henrique Cardoso como presidente, foi instituída a CPMF, que passou a vigorar em 23 de janeiro de 1997, com base na Lei nº 9.311, de 24 de outubro de 1996. A contribuição provisória foi extinta em 23 de janeiro de 1999, tendo sido substituída pelo IOF até seu restabelecimento em 17 de junho de 1999. A alíquota, que era originalmente de 0,25%, foi elevada na época de seu restabelecimento para 0,38%. Em 17 de junho de 2000 foi reduzida para 0,30% e em 19 de março de 2001 novamente elevada para 0,38%. A proposta de prorrogação da contribuição foi rejeitada pelo senado em dezembro de 2007.[1]

Diferentemente do IPMF, a CPMF era uma contribuição destinada especificamente ao custeio da Saúde Pública, da Previdência Social e do Fundo de Combate e Erradicação da Pobreza. No começo, pelo artigo 18 da Lei nº 9.311 de outubro de 1996, a totalidade da arrecadação era destinada ao Fundo Nacional de Saúde. A partir de 1999, com a Emenda Constitucional 21, a CPMF passou a destinar parte de seus recursos à Previdência Social e à erradicação da pobreza. No final de sua vigência, a Previdência Social e a erradicação da pobreza recebiam aproximadamente 26% e 21% da arrecadação, respectivamente.

Na madrugada do dia 13 de dezembro de 2007, o Senado rejeitou a proposta de prorrogação da CPMF até 2011, com 45 votos a favor do tributo e 34 contra (não houve abstenções). Para ter sido aprovada, a proposta precisaria ter passado em dois turnos, com ao menos 49 votos favoráveis em cada um. O Senado também rejeitou todas as ofertas do governo de modificação da CPMF. Entre elas, houve propostas para reduzir a alíquota, o período e a destinação do tributo. A última proposta do Palácio do Planalto era de renovar a CPMF com uma alíquota de 0,25% somente até 2010 com destino integral à saúde pública [carece de fontes]. A vigência da CPMF terminou no dia 31 de dezembro de 2007. A lista da última votação indica que a rejeição se deu em razão de defecções na base de apoio ao governo (2 membros do partido – PMDB), que tinha apenas em teoria os votos suficientes para aprovar a emenda. Os senadores oposicionistas (membros dos partidos DEM e PSDB) votaram de modo unânime pela rejeição da matéria.

Nova tentativa de recriação
No dia 28 de maio de 2008, o bloco governista fechou uma proposta de recriar o tributo sob o nome de Contribuição Social para a Saúde (CSS), através do substitutivo feito pelo deputado federal Pepe Vargas (PT-RS) ao Projeto de Lei Complementar nº 306/2008,[2] de autoria do senador Tião Viana (PT-AC). Diferentemente da CPMF, que era cobrada indistintamente, seria isento da cobrança da CSS quem receber um salário de até R$ 3.038,00. A alíquota seria de 0,1% sobre o movimento financeiro e começaria a ser cobrada a partir de janeiro de 2009.[3] Em 11 de junho de 2008, a Câmara dos Deputados aprovou a PLC por 259 votos a favor, diante de 159 votos contra e de 2 abstenções, de modo que a proposta foi aprovada com apenas 2 votos a mais que o necessário (257).[4] O projeto será encaminhado ao Senado para ser analisado por 3 comissões e submetido para votação.

Sugestão do retorno da CPMF em 2011
Depois que Dilma Rousseff (PT) foi eleita para presidente em 31 de outubro de 2010, o então presidente Lula (PT) defendeu no dia 3 de novembro, a volta do tributo a partir de 2011, primeiro ano do novo mandato presidencial.[5] No dia 4 de novembro, todos os governadores do PSB, que apoiaram Lula e a eleição de Dilma, defenderam a volta do tributo, fosse a CPMF ou com o nome de CSS (Contribuição Social para a Saúde),[6] inclusive recebendo apoio do governador reeleito de Minas Gerais, Antonio Anastasia, do opositor PSDB.[7] Lula e Dilma haviam manifestado interesse, em 2010, de recriar o imposto para 2011, por conta da diminuição da bancada da oposição no Senado e Câmara.[8] O pedido repercutiu no Senado, onde o presidente José Sarney admitiu que o Congresso possa recriar o imposto, manifestando-se em favor dessa decisão.[9]

O anúncio da recriação recebeu fortes críticas do presidente da Ordem dos Advogados do Brasil (OAB), Ophir Cavalcante[10], alegando que a carga tributária já é extremamente excessiva: "Jogar novamente no colo da sociedade a responsabilidade pela saúde, enquanto a máquina pública só aumenta seu gigantismo, é preocupante. A OAB vê com extrema preocupação essa proposta que está sendo introduzida na pauta política do país."[11] e do presidente da Fiesp e do Ciesp (Federação e Centro das Indústrias do Estado de São Paulo), Paulo Skaf: "A nossa posição é conhecida, somos contrários à criação e/ou aumento de qualquer imposto. A sociedade brasileira não aceita elevação da carga tributária. Ao contrário, quer a sua redução e o constante aumento de qualidade nos serviços públicos.".[12]

Discussão teórica
Tributos como a CPMF e a IPMF são conhecidos como Impostos de Transações Financeiras (ITF) e existem em basicamente dois tipos: impostos sobre transações nos mercados de câmbio, conhecidos como impostos de Tobin, e sobre transações em mercados de títulos. O primeiro ITF foi instituído na Inglaterra em 1936, elaborado em reação à Grande Depressão. Esse imposto, defendido pelo economista J.M. Keynes, visava a desincentivar a especulação das bolsas de valores. A ideia era de apresentar um custo monetário contra a rápida compra e venda de ações nas bolsas de valores. O imposto de Tobin segue o mesmo princípio e visa a desincentivar a especulação a curto prazo no câmbio. ITFs foram implementados em vários países desde 1936, entre eles Argentina, Estados Unidos, Reino Unido, Suécia, Brasil, Colômbia, Peru e Venezuela. A maioria dos ITFs tinha caráter temporário, com alíquota entre 0,10% e 0,25% do valor da transação.

O efeito mais aceitado de impostos ITF é o de estabilizar mercados turbulentos. Esse efeito foi demonstrado pela experiência internacional com uma variedade de sucessos. No Brasil, a CPMF também era apontada, pelo governo Lula, como uma ferramenta importante contra a sonegação de impostos. A ideia é de que a receita federal pode cruzar informações dos pagamentos de impostos da CPMF, realizados por bancos, com valores declarados por empresas e indivíduos. Por outro lado, críticos alegam que ITFs tendem a diminuir a quantidade de dinheiro líquido em um mercado financeiro, podendo curvar o crescimento econômico natural de um país. No Brasil, a CPMF era muito criticada pelo efeito cumulativo em cima do preço final de produtos manufaturados de alta complexidade, pois estes precisam de várias movimentações financeiras intermediárias até chegar ao produto final. O imposto era cobrado em cada etapa.[13]

Além das críticas baseadas em teoria econômica, muitos críticos, em geral partidários de uma ideologia mais à direita, questionam a real destinação dos recursos arrecadados pela CPMF, tendo em vista a situação precária em que se encontram alguns hospitais públicos e o atendimento a pacientes, bem como a transferência dos recursos da CPMF ao financiamento de programas sociais, como o Bolsa Família.[14] Já partidários do governo e adeptos de uma ideologia social-democrata costumam argumentar que investir no combate à desnutrição infantil e em saneamento básico, através de programas sociais, é uma forma de diminuir os problemas na área da saúde no longo prazo. Essa argumentação foi bastante defendida pelo presidente Lula durante a campanha presidencial de 2006, sem citar especificamente a CPMF.[15]

A CPMF é um imposto de baixa sonegação e com custo de arrecadação e fiscalização praticamente nulo. Ele era cobrado de forma igual entre pobres e ricos tendo uma alíquota aplicada a cada transação bancária e seu custo inclusive sendo repassado pelo comerciante ao consumidor final. Por ele ser aplicado indiscriminadamente em todas as operações bancárias, ele reduz os investimentos (aumenta os custos para investir), afeta sobremaneira as relações comerciais (cada movimentação do produto na cadeia produtiva deve pagar o imposto) e, principalmente, o assalariado haja vista que recebe seu salário mas na hora de sacar deve pagar o imposto.

Funcionamento
Base de cálculo
Qualquer operação que represente circulação escritural ou física de moeda, e de que resulte ou não transferência da titularidade dos mesmos valores, créditos e direitos. Ex: o lançamento a débito, por instituição financeira, em contas correntes de depósito, em contas correntes de empréstimo, em contas de depósito de poupança, de depósito judicial, o lançamento a crédito, por instituição financeira, em contas correntes que apresentem saldo negativo, etc. Uma simples transferência da conta corrente para conta da poupança (até no mesmo banco) implica um custo de 0,38 % do valor transferido, embora historicamente os bancos tenham arcado com essa alíquota, de forma a incentivar a continuidade do investimento em caderneta de poupança. O resgate da poupança era isento de CPMF, uma vez que o saque na conta-corrente já seria tributado.[16]

Período de pagamento
Inicialmente, o pagamento ou a retenção e o recolhimento da contribuição eram efetuados no mínimo uma vez por semana. A partir de março de 2006 a CPMF passou a ser cobrada somente três vezes por mês. O valor da CPMF acumulada é calculado a cada dez dias, e cobrada dois dias depois.

جوليانا بايفا

جوليانا بايفا دوس سانتوس هي ممثلة برازيلية. ولدت في 28 مارس 1993  أصبحت مشهورة بعد ادائها في الموسم العشرين من قلوب شابة في عام 2012. وقد ظهرت للمرة الأولى على الشاشة الصغيرة في نسخة جديدة من مسلسل تي تي تي. قامت بايفا بدور البطولة في وراء الأفق (2013) وغيرها من المشاريع، وتم تقديرها لأدائها بمسلسل أحلام إليزا في 2015 . شاركت في فيلم بالمرافعة عام 2010.
السيرة
ولدت بايفا في ريو دي جانيرو ، ابنة عارضة أزياء سابقة. بعد انتقالها مع عائلتها إلى ولاية سيارا ، درست التمثيل وانضمت إلى مجموعات المسرح. عادت إلى ريو دي جانيرو بعد بلوغها 14 عامًا لتنضم إلى وكالة الممثلين في 2009.

ظهرت جوليانا بايفا لأول مرة في التلفزيون في قناة غلوبو بمسلسل سرير القط ، يلية مسلسل عش الحياة، وظهرت لأول مرة في السينما في نفس العام في فيلم بالمرافعة .


جوليانا بايفا شاركت في الموسم العشرين من قلوب شابة كفتاة منحرفة اسمها فاتينا، وهي فتاة شعبية اللتي أغوت أولاد المدرسة. أصبحت جوليانا بايفا أيقونة في سن المراهقة بسبب شعبية شخصيتها. لعبت دورًا رائدًا في 2013 بشخصية ليلي لقناة غلوبو بمسلسل وراء الأفق.

الحياة الشخصية
في عام 2016، بدأت علاقة مع الممثل جوليانو لحام. انتهت العلاقة في سبتمبر 2017.

في عام 2018، بدأت علاقة جديدة، هذه المرة مع الممثل نيكولاس براتيس ، انتهت العلاقة التي أشيعت في شهر مارس، ومع ذلك، لم يتم تأكيد هذا من قبل أي من الممثلين.

Juliana Paiva

Juliana Paiva dos Santos (born March 28, 1993) is a Brazilian actress. She became famous after portraying Fatinha in the twentieth season of the teen telenovela Malhação in 2012, but first came to prominence on the small screen in the remake of the telenovela Ti Ti Ti. Paiva starred in Além do Horizonte (2013) and other projects, and was recognized for her performance in Totalmente Demais (2015). In film made participation in the 2010 movie Desenrola.
Biography
Paiva was born in Rio de Janeiro, the daughter of a former model. After her family moved with her to the state of Ceará, she studied acting and joined theater groups. After completing 14 years old she returned to Rio de Janeiro, convinced to work as an actress[1] and, in 2009, she joined an actor's agency. Juliana Paiva debuted in television in the Rede Globo telenovela Cama de Gato, followed by a guest star in Viver a Vida.[2]

Juliana Paiva played Valquíria Spina in the 2010 remake of the telenovela Ti Ti Ti. She debuted in cinema in the same year in the teen film Desenrola playing Tize.[2]

She guest starred as Camila in Cheias de Charme in 2010. Juliana Paiva joined the cast of the twentieth season of Malhação as a promiscuous girl named Fatinha, a popular girl who seduced the school boys. Juliana Paiva became a teen icon because of the popularity of her character.[3] She played the lead role, Lili, in the 2013 Rede Globo telenovela Além do Horizonte

Carlos Bolsonaro

Carlos Nantes Bolsonaro (born 7 December 1982) is a Brazilian politician and the second son of the 38th President of Brazil, Jair Bolsonaro.

He graduated in Aeronautical Science from Estácio de Sá University[1] and has been an Alderman of the Municipal Chamber of Rio de Janeiro since 2001, being affiliated to the Social Christian Party (PSC).[1]

His brothers are Flávio Bolsonaro, a member of the Legislative Assembly of Rio de Janeiro from 2003 until 2019[2] and currently member of the Federal Senate of Brazil, and Eduardo Bolsonaro, a member of the Chamber of Deputies since 2015.[3]

In 2000, Carlos Bolsonaro was the youngest Alderman elected in Brazil's history,[4] having received 16,053 votes. In 2016, he was re-elected to a fifth term, being the most voted with 106,657 votes

زياد علي

زياد علي محمد